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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 사적지 제31호 - 송내교회

  • 김낙주 기자
  • 입력 2026.08.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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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재(丹齎) 신채호-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송내교회는 마서면 지역의 모태교회
  • 토마스 선교사보다 50년 먼저 성경이 전래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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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무기로 삼았던 단재(丹齎) 신채호 선생은 “나라를 빼앗겨도 역사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역사가 한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끊임없이 ① 우리 민족은 누구인가? ② 우리는 왜 나라를 빼앗겼는가? ③ 다시 일어서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마음 속에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역사에서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강탈당하자 단재(丹齎)는 한국민의 마음속에 민족의 자긍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을 붙잡았다. 우리 역사를 다른 나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우리 민족도 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자긍심을 일깨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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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에게 역사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강탈당한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정신의 무기였던 것이다. 말로만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독립운동에바치는 것이 단재(丹齎) 신채호가 선택한 길이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고 있는 지금, 단재(丹齎)]가 외쳤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인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비전인 것이다.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사관(史觀)과 사실의 결합이다'라는 역사학자 E H 카의 주장은 모든 역사는 자국 중심의 사관으로 기술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사실 강대국들은 예외없이 자국의 미래 국익을 위한 역사 기술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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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의 진정한 보배를 품고 있는 충남 서천군에 가면 조선시대 최초의 성경전래지로 알려진 마량포구를 만날 수 있다. 1816년 9월 5일 한반도 서해안을 탐사하던 영국 함대의 맥스웰 함장을 통해 서천 마량진 앞바다에서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현감 이승열에게 모두 세 권의 책을 주었는데, 그중에 한 권이 다름 아닌 성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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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복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영어성경]을 주려 했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선실을 떠날 때 맥스웰이 다시 권했더니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고 한다. 첨사에게 성경을 준 장면에 관해 영국측 기록에는 “그는 어떠한 선물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마는 우리의 친절에 무척 기뻐하고 어느 정도 속이 풀렸다. 우리가 성경을 그에게 주었더니 감사한 모양으로 받아 가지고 퍽 우정적인 작별을 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영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선측이 자기들이 받은 것이 성경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영국측 기록에 의해 이 때 받은 것이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

 

총회역사위원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사적지 지정제도를 통해 12건의 순교사적지, 45건의 역사사적지를 지정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호남권에서 28건, 영남권에서 16건, 충청권에서 9건, 수도권에서 5건의 사적지 지정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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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사적지 지정을 받은 교회들 중에서는 영광 염산교회, 김제 만경교회, 옛 의성경찰서 등의 사례처럼 총회의 지원 속에 옛 예배당을 복원하거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과 연계를 통해 새롭게 기념관을 건립하는 등의 성과들도 나타난다. 비록 가시적인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적지 지정으로 인해 교회의 명예와 성도들의 자긍심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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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역사위원회가 제107회 총회 보고를 통해 제31호가 충청노회 산하 송내교회인데,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에 속한 서천군 지역인 마서면 송내리 161번지에 매요한 선교사와 박화실, 유사열 성도에 의하여 1905년 4월 15일 설립된 교회이다.

 

1913년 8월 박화실 성도가 건물을 헌납하여, 마서면 송내리 173번지 초가 5간에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후 송내교회에서는 5개의 교회가 각각 분립 개척하게 되었다. 송내교회가 위치한 지역에 10여년 전 국립생태원이 개원하면서 마을 대부분이 수용되었고, 현재 30여명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송내교회는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 및 결혼 이주자 선교에 비전을 두고 있다고 한다.

 

송내교회가 한국기독교 역사사적지로 지정된 무형의 자산은 마서면 지역의 모태교회로서, 덕암교회, 원동교회, 계동교회, 도삼교회, 당선교회를 분립 개척하였고, 121년간 지역 사회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한 교회로서, 많은 지역 주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이다. 유형적 자산으로는 송내교회당, 당회록 및 교회학교, 학습 및 세례, 이명, 교적, 장례 등 서류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1960년대 교회 종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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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아무도 없었고 한숨과 탄식, 신음이 조선반도 전역에 가득할 때 선교사도 목사도 아닌 영국 해군 함장 일행으로부터 한 권의 책자가 조선 땅에 들어왔다. 당시 마량진 첨사 조대복은 알 수 없는 글씨로 쓰인 책, 성경인 줄 알지 못하고 이를 받아 조정에 보냈지만 이제야 보니 그 책이 성경이었다. 역사를 영어로 하면 히스토리(HISTORY) ‘그분의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한 권의 성경이 마량진을 통해 전해져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교회가 세워졌고 학교와 병원도 설립되고, 근대화를 거쳐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1816년 9월 영국 군함의 성경 전래 이후 50년이 지난 1866년 9월 토마스 선교사가 자기를 향해 창을 겨누는 병사에게 ‘야소!(예수)’를 외치며 성경책을 건넸고, 그는 곧 죽음을 맞았다.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은 조선 땅에 복음을 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고, 1885년 미국 교회 공식 선교사로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뎠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보다 약 70년 앞서 성경이 먼저 한국에 전래되었다는 이 사건은 이 땅에 펼쳐진 오늘을 이해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우리가 꿈꿔야 할 내일을 그려 보게 한다.

 

선교는 연속이고 흐름이다. 혼자 이뤄내는 단독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는 구속의 역사이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연합이다. 연합이 핵심이고 거두는 이는 따로 있다. 이 세대가 아니라면 다음세대가 기쁨으로 그 곡식의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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