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과 열정보다 소중한 거룩함(계2:18~29)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종마 네 마리(아라비아 종마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가 있다. 매우 비싼 값으로 팔리는 이 말들은 주인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였기에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 유래를 보면 어떤 아라비아 예언가가 비싼 값을 주고 훌륭한 말 100마리를 구입하여 우리 안에 가두고, 10동안 먹을 것을 충분히 주되, 물은 주지 않았다. 말들은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시내가 흐르는 전경을 볼 수 있었지, 마실 수가 없었다.
말들은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아라비아 사람은 말들이 목이 말라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리의 문을 열어주었다. 말들은 거의 미친듯이 시냇물을 향해 질주했다.
말들이 거의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아라비아 에언가는 멈춤의 피리를 불었다. 그때 100마리의 말 중에서 주인의 피리소리를 듣고 멈춘 말은 4마리였다. 주인의 명령 앞에 본능을 이긴 말들이다.
아라비아 사람은 그 4마리의 말을 훈련시켜 세계적인 명마로 만들었다. ‘명마’란 “잘 달릴 줄 아는 것보다 주인의 명령 앞에서 갈증을 해결할 물(욕망)을 포기하는 말”을 의미한다.
이 명마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욕망을 절제하는 말이 세계적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이다.아라비아 종마 같은 제자! 다른 논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육신의 욕구를 향해 달려가다가도 주께서 멈추라고 말씀하시면, 즉시 멈추어서는 사람이 쓰임 받는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온갖 것들 앞에서 성령과 동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동남쪽으로 약 64Km에 위치한 조그마한 공업도시로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도시였다. 지역 자체가 초라했고,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였다.
두아디라는 내세우고 자랑할 만 한 것이 없는 작고 평범한 도시였다. 지리적으로는 버가모로 가는 관문이었다. 산이 없기에 산성을 쌓을 수 없었고, 황제 숭배를 하지 않았으나 점쟁이가 많았다.
두아디라는 로마 군인들의 주둔도시이며 두아디라의 중요한 역할은 소아시아의 수도 버가모를 지키는 1차 저지 방어선이었다.
주께서 이처럼 초라한 도시에 위치한 두아디라교회를 기억하신 이유는 외적인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믿음의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두아디라는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로서 염색과 피혁이 발달한 도시였다. 자주장사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신이었다. 두아디라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가장 긴 편지를 받았다.
두아디라 교회는 장점과 열정이 있었다. 두아디라 교회의 자랑은 “사랑, 충성, 봉사, 인내”였다. 봉사는 사랑의 결과이고, 인내는 충성의 열매였으나, 가장 소중한 거룩함을 잃어버렸다.
두아디라는 모든 것이 ‘길드’라는 조합에 의해 운영되었다. 출세를 하려면 조합에 가입해야만 했다. 조합에 가입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나 두아디라 교회는 조합을 거부하여 왕따가 되었다.
조합에 가입된 사람들은 장사를 위해 ① 신전에 제사를 지내고, ② 우상 제물로 공동식사를 하고, ③ 식사를 마치면 술잔치를 했고, ④ 술잔치가 끝나면 음행의식이 진행되었다.
처음 두아디라교회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손해 보는 것을 택했다. 비굴하게 살기보다는 정직한 가난과 순교를 각오했다.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악한 행동을 하려다가도 “이러다가 내가 벌 받지”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악한 행동을 멈춘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악한 행동을 하다가보면 양심이 마비되어 제멋대로 산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만약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만 한다면 사람들은 못할 짓이 없다”고 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고 했다.
주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철저히 꿰뚫어 보고 계신다. 불꽃같은 눈앞에 어떠한 행위도 감출 수 없고, 마음에 담고 있는 조그마한 것까지도 감출 수 없다. 모든 것이 드러난다.
① ‘그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예리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찌라(23)고 하셨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기에 어떠한 죄악도 숨길 수 없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하나도 없다. 불꽃같은 눈으로 은밀한 죄, 부지중에 지은 죄 등등,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보고 아신다.
②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는 것은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신 주의 모습”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청동판 같은 발에 한번 밟히면 “뼈가 으스러지고 모든 것이 박살”나지 않겠느냐?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주께서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23)”고 하셨다. 또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27”고 하셨다.
우리가 지난주에 다루었던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주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모습”이었다.
순교 당하는 위험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던 좋은 부분은 남겨두고, 발람의 교훈을 따랐던 잘못된 부분은 과감히 잘라내기 위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버가모 교회나 두아디라 교회나 똑같이 음행이 문제가 되었던 교회였다. 그러나 주께서 보실 때 두아디라교회가 훨씬 더 심각했기에 “통찰력과 심판의 권세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두아디라 교회는 장점과 칭찬받을 만한 좋은 점이 있었다. 에베소교회는 첫사랑이 식어 신앙이 껍데기만 남은 모습이라면 두아디라교회는 처음 행위보다는 나중 행위가 더 좋아지는 교회였다.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주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6가지 장점을 칭찬하셨다. ① 사업을 안다고 하셨다. 여기서 사업은 세상 직업이 아니고, “주의 사업, 주의 일”을 말한다.
두아디라 교회는 주께서 칭찬하실 정도로 주의 일에 열심이었다. 교육과 전도, 봉사와 헌신에 열정적이었다.
② 사랑을 안다고 하셨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다. ③ 두아디라 교회의 ‘믿음’을 아신다고 하셨다. 그들이 가졌던 믿음은 “환난과 핍박이 몰아치는 환경 속에서의 믿음”이었다.
④ 두아디라교회의 ‘섬김’을 아신다고 하셨다. 주께서 인정하실 정도로 열심히 섬겼던 교회가 두아디라교회였다.
⑤ 두아디라 교회의 ‘인내’를 아신다고 하셨다. 두아디라교회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하는 “환난과 핍박, 배고픔과 굶주림” 속에서도 믿음으로 인내했다. 고난과 역경을 참고 견디는 교회였다.
⑥ 두아디라 교회는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 보다 많도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와 복음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일을 감당했다. 점점 갈수록 좋아지는 교회였다.
‘점점 갈수록 좋아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성경에 보면 출발은 좋았지만, 나중에 잘못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① 사울 왕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가 버림받았고, ② 게하시도 물질에 눈이 어두워 문둥병자가 되었고, ③ 가롯 유다도 돈 욕심 때문에 예수를 팔았고, ④ 세상을 사랑한 데마는 복음을 배신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온갖 핍박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과 믿음이 충만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있었다.
물질과 이성의 유혹에 넘어졌던 버가모 교회와는 달리 두아디라 교회는 점점 더 좋아지는 교회였다. 우리도 가면 갈수록 처음보다 더 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성장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는 것보다 존경받는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다. 신앙생활도 끝이 시작보다 좋아야 한다(전7:8).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이 좋게 끝나기를 소망한다. 인생을 좋게 마무리하려면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져야 한다(요삼1:3).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고 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 모습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교회였으나 불행하게도 “거룩함을 잃어버린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를 용납했다가 거룩을 잃어버려 책망을 받았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은 ① 세상을 편하게 살자, ② 대충대충 적당하게 살자고 꾈 때 유혹을 용납하였기에 거룩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였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 강권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는 시험할 뿐이지만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용납하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다. 담대하게 거절하면 승리한다.
교회를 위해 많이 수고하고, 주의 일에 열중하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믿음과 거룩함을 지켜내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서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의 아내, 왕비가 되었다.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이스라엘에까지 끌고 와서 이스라엘에게 섬김을 강요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어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도록 만들었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엘리야의 목숨까지 빼앗으려고 계획했다.
이세벨은 하나님께서 주신 포도원을 지키려는 나봇을 거짓 증인들을 세워 죽이도록 만든 악한 일을 감당했다. 아합의 아내, 왕비 이세벨은 모략과 정치 수단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그런데 구약의 이세벨처럼 악한 여자가 두아디라 교회에도 있었다. 그 여자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라고 말할 정도로 두아디라 교회에서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두아디라 교회에서 인정받지도 못하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가 점점 “성도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문헌에 의하면 그 여자에게는 “상당한 매력과 설득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수많은 남자들이 한 번 보면 마음을 빼앗길 정도의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던 여자가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기 시작하여 결국 거룩함을 상실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룩을 잃어버리기 너무나 쉬운 세상이 되었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으로 유익한 정보보다, 오히려 음란과 퇴폐를 광속(光速)으로 퍼트리는 역기능이 문제화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란과 퇴폐 문화는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컴퓨터 마우스를 잘못 누르면 손쉽게 음란에 빠져 들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헛된 삶이 된다.
강력한 태풍처럼 몰려오는 음란과 퇴폐문화를 믿음으로 막아내지 못하면 거룩을 상실하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세상의 문화와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믿음과 거룩을 보존하는 교회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두아디라 교회는 좋은 장점과 열정을 가졌으나 믿음과 거룩을 잃었기에 주께 책망받는 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주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21).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나 그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즉시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의 제자 가롯 유다도 예수께서 만찬 석상에서 깨닫게 하셨으나 기회를 놓쳤고, 아니니아와 삽비라도 베드로가 다시 물을 때 거짓말로 대답함으로 기회를 놓쳤다.
주께서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 회개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3가지로 나타난다(22~23).
① ‘침상에 던지겠다’고 하셨다. ‘침상에 던진다’는 것은 “병에 걸려 자리에 눕는 것”을 의미한다.
② ‘환난 가운데 던지겠다’고 하셨다. 건강을 잃고 자리에 누워도 회개치 않으면 환난을 보내시겠다고 하셨다.
③ ‘그의 자녀를 죽이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병을 주고, 환난을 주고, 자녀들을 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고 끝까지 믿음과 거룩함을 지킨 성도들에게 2가지를 약속 하셨다. 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고, ② 새벽별을 주겠다고 하셨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통치권, 지배권”을 의미한다. 믿음과 거룩을 지킨 성도들은 주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게 된다.
또한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28)’고 하셨는데, ‘새벽별’은 무엇을 의미할까? ‘광명한 새벽별’은 예수님을 의미한다(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22:16)”
온갖 유혹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과 거룩을 지킨 성도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음란의 영에 미혹되고, 욕심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후회할 날이 반드시 임한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자.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주께서는 지금 우리를 꿰뚫어보고 계신다. 주께 인정받는 믿음이냐? 내 기분대로 살면 어떤 종교행위도 모른다고 하신다(마7:21).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 행위보다 갈수록 나중 행위가 더 많음을 칭찬받았다. 그러나 성적인 부도덕함으로 이끄는 자칭 선지자를 용납하여 거룩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고 말았다.
교회는 점점 커지는 것보다 믿음과 거룩을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생활이 소중하다.
본래 ‘거룩’의 뜻은 “구별됨”이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생각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싸워 이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들보다 더 좋은 무기나 강한 훈련과 체력 단련을 시키지 않으시고,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 거룩을 요구하셨다.
우상과 죄악으로 오염된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을 만들 주역은 믿음과 거룩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시대를 책임질 사람 또한 믿음과 거룩을 생명처럼 지키는 사람이다.
가나안 문화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 거룩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목사는 3가지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①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라’, “성도들은 이제 더 이상 어둠 속에 파묻혀 사는 바퀴벌레가 아니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identity)를 숨기고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 시민권을 당당하게 밝힐 수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② ‘No라고 말하라’고 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다.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No!”라고 말할 수 있다. 거룩과 성결을 위해 단호하게 “No!”를 외쳐야 한다.
③ ‘서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소그룹을 형성하라’고 했다.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려는 노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서로 체크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를 죄악으로 유혹하는 사람들을 단호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슬피우는 날이 임하고 만다. 믿음을 변질시키는 어떤 장소도, 사람도 가까이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우리가 거룩하면 할수록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행복하게”하는 능력은 거룩 속에 담겨 있다. 거룩과 성결의 옷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