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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원하시면 깨끗할 수 있나이다(막1:40~45)

  • 김낙주 기자
  • 입력 2026.04.2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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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원하시면 깨끗할 수 있나이다(막1:40~45) 

 

미국에 ‘스탠리 탬’이라는 미국 플라스틱 회사의 회장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5번 실패를 맛보았다. 낙심하여 트럭에 짐을 싣고 시골로 가던 중에 주의 음성을 들었다.

 

스탠리 탬을 찾아온 하나님은 “왜 일을 혼자 추진하고 내게는 구하지 않느냐? 너의 사업을 나에게 넘겨주면 내가 성공시켜 주리라”고 응답하셨다.

 

새벽에 교회를 찾아간 스탠리 탬은 간절히 기도를 시작했더니 기도 중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베드로의 환상으로 떠올랐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했기에 서럽게 울면서 “주께서 제 손을 붙들어 주시면 저도 얼마든지 다시금 일어설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더니 예수의 손을 붙들고 물위를 걷는 베드로가 보였다고 한다.

 

스탠리 탬은 기도하는 중에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2:8)”는 말씀을 응답으로 받았다. 그는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기로 결단했다.

 

이제부터 모든 수익의 51%는 하나님의 것을 선포하고 많든지 적든지 간에 회사 수익금의 51%를 어김없이 하나님께 바쳤다.

 

스탠리 탬의 유나이트 스테이츠 플라스틱 회사는 날로 번창해 갔다. 그 결과 그는 지금도 매년 수백만 불씩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스탠리 탬 장로는 자기가 하나님께 한 약속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아예 회사의 정관과 유언장에 그대로 작성을 해 놓았다. 그의 회사 정문에서 회사 이름보다 더 큰 간판이 있다.

 

“Christ is the Answer, 그리스도가 해답이십니다.” 이 간판을 보고 회사에 와서 상담을 받고 예수를 믿기를 작정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한국에도 스탠리 탬 장로의 헌금으로 300여개의 교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스탠리 탬이 세운 삶의 지침은 5가지이다.

 

① 어떤 역경에도 하나님께 감사하자. ② 형제에게 해로운 말을 하려거든 차라리 번갯불에 손을 대자. ③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자. ④ 사랑으로 경영하고 분노로 사람을 다스리지 말자. ⑤ 매일 3번 다른 사람을 칭찬하자.

 

스탠리 탬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살았다. ① 매일 세 사람을 예수께로 전도하고, ② 일생동안 백만 명에게 예수를 전하고, ③ 해마다 선교사역을 위해 백만달러를 헌금하기로(1억8백만)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다.

 

삶의 100%를 다 하나님께 드린 스탠리 탬은 진정으로 부유한 인생을 살았다. 스탠리 탬은 2023년 4월 16일 107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61세에 척추암 3기에서 고침받았는데, 감사만 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박수갈채를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보내셨다.

 

그런데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예수를 수소문해서 찾아온 이유는 자신들의 욕망과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었기에 만나지 않았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첫 번째 사역은 회당에서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었고, 두 번째 사역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친 것이었다. 귀신이 쫓겨나고 질병이 치유된 것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얽매였던 것에서 해방되고 온갖 연약함에서 회복된다. 오늘 본문의 나병이 치유되는 사건은 예수를 통해 임하게 된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대 사회에서 나병(문둥병, 한센씨병)은 단순히 피부병으로만 취급되지 않고,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진 ‘부정한 병’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나병환자는 구약에서 ‘진 밖으로 쫓겨나야(레13:45~46)’ 했다. 이스라엘 공동체 밖으로 쫓겨남을 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에서 끊겨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 나병(문둥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저주 받음)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미리암(민12:10)과 웃시야 왕(대하26:16~21)의 예들이다. 나병에 걸리면 마치 죽은 자와 같이 취급했다.

 

나병(문둥병)은 모든 것 특히 공동체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병으로 산송장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나병(문둥병)은 사람이 당하는 질병 중 최악의 질병으로서 저주받은 병으로 취급되었다.

 

나병환자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면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알리기 위해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거듭 소리쳐야 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안수하셔서 나병을 고치셨다(41). 이것은 깜짝 놀랄만한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당시의 관습상 매우 파격적으로 나병을 고치셨고, 마가는 복음서의 앞부분에 이 사건을 기록했을까?

 

예수께서 나병(문둥병)을 고치신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레위기에 나병(문둥병)의 규례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규례 다음에 등장하기에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 레위기는 전반부(1~16장)는 제사를 통한 거룩을 강조하고, 후반부(17~27장)는 삶을 통한 거룩을 강조하고 있다.

 

구약에서 거룩한 백성이냐? 부정한 백성이냐?의 문제는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구약에 나타난 음식에 대한 규례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지키려는 것은 성경의 의도와 다르다.

 

구약에 나타난 음식에 관한 규례는 문자적인 이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음식에 관한 규례의 목적은 ①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임을 알게 하고, ② 구별된 삶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음식에 대한 법을 기록한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을 보면, 서론과 결론이 등장한다. 음식법의 서론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신14:2)”이고, 결론은 “너희는 하나님의 성민이라(신14:21)”고 했다.

 

음식법의 서론과 결론에서는 음식을 구별하는 것, 그 자체보다도 음식의 구별이 이스라엘에게 주는 의미(구별된 백성)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 이후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우리의 음식이 된다고 하셨고(창9:4), 예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행15장을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모든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한 규례는 한정된 때에만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신14:21에 이방인들과 외국인에게 팔았다.

 

따라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규례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에게만 명령되었으며 이방인들에게는 상관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음식법은 안식교의 주장처럼 위생이나 건강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음식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구별됨을 인식시키고, 구별된 삶을 살도록 계속 독려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나병(문둥병)에 관한 언급도 음식법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나병환자를 쫓아낸 것은 전염성이 있거나 죽을 병이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순전함과 온전함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나병(문둥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신 사건을 단순히 어떤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만 설명해서는 안된다. 이 사건 속에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본질이 나타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병(문둥병)에 걸린 사람의 치유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이스라엘의 특권적인 위치가 없어지고, 새로운 언약 공동체 또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께서 나병(문둥병)을 고치신 사건이 구원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산상보훈 다음에, 누가는 제자를 부르신 다음에 등장한다.

 

예수는 나병(문둥병)을 깨끗하게 고치신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43). 구원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엄청난 사건인데 사람들은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자나 병을 고치는 자로 인식할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 관련된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의 사역을 현실적이고 정치적으로 취급할 수 있었다.

 

잘못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나병(문둥병)을 깨끗하게 고치신 후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사역자들이 육체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자랑하려고 하는데,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 의학이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서 회복될 수 있고, 과학이나 의술로 설명될 수 없는 많은 기적적인 일들을 체험할 수 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기에 기적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기적을 체험했을 때 그 자체가 자랑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병(문둥병)의 가장 큰 특징은 신경세포가 파괴되어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아파야 하는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영적인 나병은 하나님과 분리된 영혼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세상에서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간다. 기도와 예배를 멀리해도 세상을 사는데에는 지장이 없으나 점점 영적으로 무감각해진다.

 

성경에 등장하는 나병(문둥병) 환자들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병을 깨끗하게 치유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상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예수께서 여신 새로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나병환자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① 나병환자가 먼저 예수께 나아왔다. 나병환자는 율법에 의해 절대로 사람들 앞에 나아올 수 없었다.

 

나병환자가 예수께 나아오기 위해서 엄청난 용기와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했다. 수많은 저주와 돌팔매질을 받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② ‘꿇어 엎드렸다’는 것은 “경배했다”는 의미로 나병환자는 무릎을 꿇고 진정 겸손함으로 예수께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③ 간구하기를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했다. ‘원하시면’은 의심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소원보다도 예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일치시키겠다”는 것이다.

나병환자는 예수께서 원하시면 자신의 불치병을 고치실 줄로 믿었다. 그러나 겟세마네 기도처럼 “나병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언제든지 자기의 소원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나병환자는 생명을 걸고 예수께 나아왔고, 나병의 치유는 절대적인 소원이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 했기에 대단한 것이다.

 

나병환자가 고침 받을 때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된 것은 예수께서 여신 새로운 시대를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나올 수 있는 상황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병환자와 같이 나올 수 없는 상황에도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또한 예수 앞에 나올 때마다 나병환자처럼 가장 낮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회적 지위나 위치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기에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예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항상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하고, 간절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간구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임을 믿으며 조금도 의심치 않고,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간구해야 한다.

 

당시 나병(문둥병)은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을 상징하는 ‘천형(天刑)’이었기에 제사장을 찾아가서 진단을 받아야만 했다(레13:11).

 

그러면 나병환자는 어떻게 예수께 무릎꿇고 친유를 간구했을까? 그 힌트는 마태복음에 있다(마8:1~2). 예수의 산상설교를 듣던 청중 중 한 사람이 나병환자였기에 담대하게 간구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나병환자를 향해 ‘고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다. 육신의 문제라면 고침을 받으라가 맞지만, 영적인-사회적인 문제에서 깨끗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정결하게 되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의 불쌍히 여기심이다. 예수께서 원하시면 불치병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도 기적이 임한다.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예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자리는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듣는 자리이다. 나병환자의 치유 기적도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영혼의 깨끗함을 위해 부르짖어야 한다.

 

예수는 나병이 치유된 사람에게 “모세가 명한 것을 제사장에게 드리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입증하라”고 말씀하셨다(44).

 

나병 환자가 예수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예수는 더 이상 동네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예수는 사람들의 인기나 유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예수를 통해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셨다.

 

말씀만으로도 능히 고칠 수 있으신데 당시의 정결법 규례를 깨뜨리는 행동을 하셨다. 예수는 나병 환자를 만지심으로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 되셨다. 예수의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은 제도적 규례를 어김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연대감을 통한 치유였다.

 

가장 혐오적인(저주받은) 질병을 치유하신 예수는 우리의 죄의 결과인 죽음을 대신하기 위해 대속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다.

 

오늘을 살면서 반드시 시급하게 고쳐야 할 질병은 영혼의 질병이다. 영혼의 질병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상처, 삐뚤어진 성격, 잘못된 습관과 기질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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