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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시작된 예수의 복음(막1:1~8)

  • 김낙주 기자
  • 입력 2026.04.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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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시작된 예수의 복음(막1:1~8)

 

마가복음은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책으로 어떤 신학자는 “진정한 의미의 복음서”라고 불린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복음’이 공식적인 문서로 기록되었다.

 

마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해 기록되었기에 구약성경 인용이 적고, 이방인을 위해 히브리적 개념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마가복음은 이방인 중에서도 절대 권력의 핵심지요, 혼합 사상의 숙주였던 로마에 거주하는 신앙인을 위해 쓰인 영적 안내서였다.

 

마가복음이 쓰였던 A.D.65~70년 당시 로마에 거주하는 신앙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극심한 핍박을 받았다. 권력을 이용한 상상할 수도 없는 악행이 가해질 때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 당했다고 추정한다.

 

A.D.64년경 로마시에는 대화재가 발생했다. 로마시의 절반 이상(14구역 중 10구역)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불타오르는 지옥을 연상케 했다. 신전들과 기념적인 건물들, 예술작품들이 소실되었다.

 

로마시의 대화재의 원인이 네로 황제라는 소문이 돌았기에, 네로 황제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네로 황제는 어머니가 아들을 황제로 올리기 위해 남편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했고, 16세에 황제가 되어 32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로마의 신앙인들은 번영의 도시 로마의 화려한 물질문명을 접하며, 신앙인들은 상대적으로 지켜온 신앙과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참혹한 박해와 영적 지도자의 순교가 절망으로 자리 잡았다.

 

현실 상황의 태풍 앞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 마가복음이 소망의 길을 제시했다. 21세기 성도들은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신앙을 다음 세대에 이어갈 소명을 받았다. 삶의 각처에서 기독교의 절대 진리와 교회의 존재가 심각한 조롱과 냉대가 가득하다.

 

한국교회는 과거에 누렸던 영광을 잃은 지 오래 되었고, 오히려 동력이 되어야 할 진리에 대한 확신마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마가복음은 짙은 회의주의 시대에 복음의 영광스러움을 드러내는 말씀이다. 간결하고도 확신에 찬 마가의 메시지는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던 신앙인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마가라 하는 요한(행12:25)’이다. 보통 마가는 성이고 요한은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마가는 헬라어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어 이름이다.

 

마가의 집은 예수와 제자들의 주요 거점인 오순절 성령이 임했던 초대교회 중심 무대가 되었다. 마가 요한은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동참했다가 무슨 이유인지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마가 요한이 선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한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인내심 부족”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은 인내심 부족으로 실패를 경험한 마가를 위해 격려자 바나바를 준비하셨고, 또 한 사람 베드로를 준비하셨다(벧전5:13).

 

베드로 사도는 마가를 “내 아들 마가(벧전5:13)”라고 지칭했다. 베드로는 아버지 없이 성장한 마가를 아들같이 사랑했다. 결국 마가는 모든 낙심과 좌절을 딛고 일어나 훌륭한 사역자가 되었다. 완강하게 거부했던 바울이 가장 총애하는 사역자가 되었다(딤후4:11).

마가 요한은 종의 모습으로 찾아와 실패했던 자신을 섬기신 예수를 체험한 생생한 말씀을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의 전체 요절은 막10:45(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이다.

 

예수는 실패했던 마가만을 섬기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여러 실패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을 섬기고,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마가 요한을 변화시켰던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변화된 인생의 주인공이 되자.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의 서론에 해당한다. 마가복음의 서론은 다른 공관복음의 서론에 비해 굉장히 짧으나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마가는 백성들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를 대조하고 있다.

 

마가는 마가복음 시작부터 아주 단호한 선언으로 시작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에 대한 말씀은 복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는 로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당시 로마사람들은 모두 로마의 위대함에 도취되어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 기원전 1세기말부터 약 200년간)’를 외치며, 로마 황제는 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초대 교회 문서를 보면 마가가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동행했다는 기록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결국 마가를 데리고 다니면서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든 것은 사도 베드로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3번이나 부인했던 가슴 아픈 기억을 지닌 사람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넘어짐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경험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베드로 앞에 선교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되돌아온 마가에게서 과거 자신의 처참했던 영적인 상태를 발견했다.

베드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가 요한을 영적인 아들로 받아들여 양육을 시작했다. 마가가 기록한 말씀 속에는 베드로의 언어 스타일이 자주 등장한다. 서로 닮아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가복음의 특징은 ① 예수의 교훈보다 행위에 강조점을 두었고, ② 베드로의 설교 통역자로서의 직접적인 증거 자료를 사용하였고, ③ 제자들의 답답함, 청중들의 이해 못함, 예수의 감정까지 기록했고, ④ 예수의 모든 생애가 십자가와 부활을 향한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한국교회는 지금 성장이 멈추었고, 전도해도 안된다는 패배감이 팽배해 있다. 기도하는 무리도, 봉사하는 무리도 점점 줄어들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마저도 식어 냉랭하고 썰렁한 분위기이다.

 

‘복음의 시작’이란 “다시금 출발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질병 때문에, 물질적 어려움 때문에 내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만나 새로운 삶의 시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의 복음을 만나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고목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듯,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극히 큰 군대가 된다.

 

복음의 시작을 선포하며 구약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그냥 우발적으로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역사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롬1장에서 “자신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복음인 그리스도는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선포했다(롬1:2).

 

예수는 구약시대부터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복음을 직접 선포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예수가 오시기 직전에는 세례 요한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네로 황제 때 베드로가 순교를 당하자 베드로의 설교를 통역했던 마가 요한에게 “통역했던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해 전도할 수 있도록 문서로 만들라는 것”을 요청했다.

 

마가복음은 실제로 예수의 사역과 복음에 대한 베드로의 증언으로 거의 이야기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지상 최대의 뉴스로 생각했다.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첫 번째 인물은 세례요한이다. 세례요한의 삶의 특징은 ①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사는 사람이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세상에 사는 이유와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붙들린 사람이었다.

 

금은보화를 두르고 진수성찬으로 살아도 자신의 소명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하루하루 생물학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진지하게 “내 인생은 나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인가?”, ‘나는 소명에 눈떴는가?’ 하고 자문해봐야 한다.

 

히브리어로 ‘청년’은 “국가의 부름을 받은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존재”가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시110:3)”들이다. 생물학적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나이가 젊어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고, 늙어도 부르심을 깨달았다면 평생 청년으로 산다.

 

② 세례 요한은 소박한 사람이었다. 낙타털 옷은 당시 서민들이 즐겨 입는 소박하고 평범한 옷이었고, 평범한 가죽띠를 사용했다.

오늘날 남자들이 허리띠나 시계, 가방 등으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데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별달리 치장할 것이 없는 남자들에게 생활수준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액세서리였다.

 

세례요한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 6.25 전쟁 직후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밀가루를 배급했듯이, 세례요한이 살던 시대에는 메뚜기를 배급했다. 메뚜기는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식사를 마친 뒤 디저트로 꿀을 즐겨 먹었는데, 그중 세례 요한이 즐겨 먹던 석청은 가장 가난한 이들이 먹는 꿀이었다.

 

복잡한 궁궐과 화려한 도시를 떠나 검소한 의식주를 영위하며 빈 들에서 예수를 전하는 삶, 그것이 세례 요한의 삶이었다.

 

③ 세례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7). 세례요한은 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 목회자였다. 목에 힘이 들어갈 만한데 겸손히 낮추고 곧 오실 예수만을 증거했다.

 

코리텐 붐 여사는 유대인들을 은신처에 숨겨준 죄로 포로수용소에 갇혀 온갖 고통을 당했다. 석방된 뒤에는 네델란드와 독일에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다.

 

코리텐 붐 여사가 가는 곳마다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회개와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한 목사가 “여사님, 좀 웃으세요. 이들의 환호성이 기쁘지 않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코리텐 붐 여사는 “나귀가 주인 흉내 내면 안 되죠”라고 대답했다. 세례 요한은 세상의 박수갈채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중에도 자신의 위치(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를 정확히 알았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광야에 외치는 자’가 아니라 “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았다.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5)’ 나아와서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

 

당시에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그 표시로 세례를 받았다.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세례는 필수 요건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유대교를 믿었던 유대인들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회개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다. 세례요한의 설교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유대교와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신분이 하나님의 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은 것이다.

 

매번 습관을 따라 종교생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구원을 체험했음에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죄 가운데 살고 있음을 회개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알면서도 늘 마음속 깊이 죄를 품고 사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주일에만 반짝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를 떠나는 순간 세상에 심취해 사는 정욕적인 삶을 회개해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쁘게 살아야 함에도 세상에 속한 것을 소유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린 것처럼 날마다 염려하고, 근심하며, 불평과 원망과 미워하는 삶을 회개해야 한다.

 

회개의 세례를 받는 방법은 “성에 살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만나기 위해 도시를 떠나 척박한 광야로 나와야만 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 복음의 진앙은 로마의 수도가 아니었고, 철학의 도시 그리스의 아테네도 아니었고, 심지어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축복의 폭발이 일어난 곳은 놀랍게도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은 시작되었다.

 

엄청난 영적인 지진이 우리의 심령에 임해야 기질과 성품과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다이아몬드와 석탄은 원소기호가 탄소이다.

 

석탄은 탄소 원자들이 제멋대로 흐트러진 상태이고,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모여 만들어진 정사면체가 가로, 세로, 높이 세 방향으로 반복해서 결합된 결정이다. 자연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려면 수백만 년의 시간 동안 엄청난 열과 압력을 견뎌야 한다.

 

세례 요한은 단순히 세상과 담을 쌓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철저한 광야의 사람이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죄와 부패였던 것”이다.

 

세례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세례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엄청난 약속을 했다.

 

세례 요한은 자기는 뒤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발끈을 풀 수도 없다고 했다. 예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다녔고 그 샌들 끈을 매고 푸는 것은 가장 낮은 하인이 했던 일이다.

 

세례요한은 예수의 가장 낮은 하인도 되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예수의 지위와 능력과 영광이 피조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예수의 가장 놀라운 사역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다. 예수는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려고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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