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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외침을 듣고 순종하라(잠1:20~33)

  • 김낙주 기자
  • 입력 2026.04.2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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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외침을 듣고 순종하라(잠1:20~33) 

 

예수께서 제자들을 각 고을로 파송하시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다(마10:16)”고 하시면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하셨다.

 

또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14:20)”고 했다.

 

지혜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성품이다. 이 지혜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지혜를 후히 주실 준비를 하셨다(약1:5).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 나타내신 지혜의 말씀들이다. 특히 본문에서는 ‘지혜’가 의인화가 되어 스스로 사람들을 부르고 훈계하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면, 지혜가 열변을 토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한 순간의 결단이 인생의 진로를 행복으로 만들 수도 있고 불행으로 만들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면서 선택해야 할 시기가 있다. 이때 각자의 선택이 인생 진로를 결정짓는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것을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한다. 잘못 들여놓은 생활의 습관은 바꾸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오랜 습관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아버린다.

 

가치관은 선택과 결정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누구든지 삶의 길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

 

지혜가 누구를 비유하느냐 하는 문제는 성경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지혜가 하는 일을 살펴보면, 하나님 외에는 하실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본문 후반부에서는 지혜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이 지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여 있느니라(골2:2~3)”

 

지혜가 외치는 것은 “어리석음과 미련함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가 탄식하고 경고하고 교훈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지혜의 외침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살아 있어서 읽고 듣는 사람들의 심령골수까지 울리도록 외치고 있다.

 

지혜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미련한 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장래를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자신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러도 대답지 않겠고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행위로 뿌린 열매를 먹을 것이고 자기 꾀에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위로 뿌린 열매를 거두는 것은 자기가 행한 그대로 되갚음을 받는 것이며, 자기가 베푼 꾀에 스스로 걸려들 것임을 말씀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① 지식을 미워하고, ②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③ 말씀이 주시는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④ 책망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들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 세상 나라들은 모두 맹수처럼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어디에 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지혜의 초청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가 길에서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남대문시장에 가면 많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르면서 사라고 한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사람들을 다른 물건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는 것인데,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잠깐 쳐다보기만 하고 바삐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훤화하는 길머리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무슨 행사 같은 것을 하는데, 그때에도 빠지지 않고 나타나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희귀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흔하면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세상에 흔하지 않는 물건은 소장하려고 덤벼들지만, 아주 흔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싫어한 이유는 22~23절에서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싫어한 이유는 책망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들은 어느 것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오늘날에도 세상에는 좋은 것이 너무나 많고 좋은데,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을 가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해 바보가 되고, 무능한 자가 되고, 심지어는 세상에 대해 죽으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이 세상에 다 있는데 말씀은 세상 성공의 길을 가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 이유는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얻게 된 어떤 성공도 거만한 자를 만들어 버린다. 거만한 자는 자기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거만한 사람은 자기가 성공했다고 생각하기에 “말씀으로 자기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다.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세상에서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과 감각을 부어주신다. 삶은 힘들고 어려운데 우리 안에는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세상에서 좋은 것의 특징은 빨리 부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부어지는 곳에는 부패가 없다.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부패를 이긴다.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3)’ ‘말을 보여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을 보여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고,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잔치하는 곳에는 맹수들은 불이 무서워서 곁으로 오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말씀과 성령을 주셨는데,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봤지만 완전히 실패했을 때 비로소 돌아온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풍성한 말씀을 멸시했을까? 그것은 “세상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하니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씀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세상 속에서 적당하게 믿음과 세상을 섞어서 소유하려고 했다.

 

세상의 방식대로 살면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나중에는 세상에 너무나 오염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의 길을 따라가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잇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망해야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믿음의 눈을 뜨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도 처음에는 엄청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미 세상 방법은 통하지 않게 되어버렸고, 하나님의 능력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으로 달려간 사람들의 결과가 무엇일까? 일단 당장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적인 본성에 따라서 마음껏 다른 사람들을 경쟁하면서 살게 된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예측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어려움이 찾아온다. 결국 성패는 여기서 갈라진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어려움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극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 정욕을 따라간 사람들의 마지막은 사망이다. 두려움의 광풍과 재앙의 폭풍이 등장한다(27). 태풍과 광풍은 전혀 사람의 힘으로는 예측할 수 없다.

 

재난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터지기 때문에 “꽝”하고 터지는 순간 수습이 불가능해진다. 보통 생각하기를 “어려울 때 부르짖고 찾으면 도와주실 것 같은데,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실까? 위기의 순간에 기도를 붙잡는 사람들은 당장의 위기만 면하려고 하는 위선적 신앙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뿌린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 세상에서 바보 취급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뿌린 자는 말씀의 열매를 거둔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가 없다면 모두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길을 걸어간다. 세상에서 사람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세상에서 바보처럼 살아온 사람들은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가 하면, 지금까지 자기 꾀만 믿고 살아온 사람들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하나님의 지식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받기를 싫어할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판단하고 뿌린대로 그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다. 동물적인 삶은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는 삶을 산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열매를 만들어내는 삶을 산다.

 

열매를 만들어내는 나무는 다른 동물들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열매를 만들어낸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 먹고 배가 부르게 될 것이다.말씀의 열매로 세상을 배부르게 해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이 퇴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32). 오히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빨리 간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퇴보인 줄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더 진정한 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은 세상의 것들을 많이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나 가난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영적 질병에 걸려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쉽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영적 질병이 ① 열등감, ② 교만이다. 열등감과 교만은 하나님의 음성을 굴절시키는 대단한 힘이 있다.

 

영적 질병을 치료받은 사람들은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성별된 삶이란 세상에 물들지 않은 구별된 삶 즉 세상과 분리된 삶을 뜻한다. 세상에 물들어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은 원하시는 때와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시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문을 열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게으름이 아니다.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듣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많은 신앙인들의 문제이다.

 

‘미련한 자의 안일’이 불행인 이유는 “얼마든지 자신의 길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계속 세상 길을 버리고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고집이나 생각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진정한 보물은 말씀을 붙들고 고난을 통과한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보물을 원하셨는데, 세상에서 잔뜩 고철만 모아놓고도 보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리석은 것이다.

 

세상에서 오직 돈과 명예와 권력만을 향해 달린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내놓을 보물이 없다. 고난을 통과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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