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라(잠1:1~9)
유대인처럼 역경에 강한 민족은 없다. 민족 존망의 위기를 딛고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민족이 유대인이다. 인생 철학 1%의 확률을 100%의 성공으로 이끌며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민족이다.
유대인들은 재산, 애정, 인간관계, 습관, 소통, 번민 등과 관련하여 분쟁이 발생할 때 언제나 탈무드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위대한 연구’라는 뜻의 탈무드는 오래된 고전이면서도 오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선한 발상, 탁월한 지혜의 비밀이 담겨 있다. 탈무드의 핵심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미친 듯이 실천하는 것이다.
‘솔로몬 부자학 31장’이라는 책을 쓴 스티븐 스캇은 “대학을 졸업하고 6년 동안 가는 곳마다 해고를 당해 9번이나 직업을 잃었다”고 한다. 게리 스몰리 박사를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게리 스몰리 박사는 “이 사람아 낙심하지 말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언 한 장씩만 읽어보라. 그렇게 하면 2년 안에 사장보다 똑똑해지고, 5년 안에는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다네”라고 했다.
게리 스몰리 박사의 권고대로 스티븐 스캇은 매일 잠언을 한 장씩 읽었고, 더불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가며 삶에서, 인간관계에서, 사업에서 성공과 행복을 성취하고, 부유함까지 이루었다.
물질적인 재산을 축적하는 것보다 정신적인 재산을 내면에 축적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 솔로몬은 두 종류의 재산을 모두 축적하라고 권면하며 성실한 노력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맺는다고 약속한다.
시편은 믿음을 말씀하고, 잠언은 지혜의 행함을 말씀한다. 우리 성경에는 모두 “지혜”로 번역했으나원어에는 6가지로 구분한다.① 처세적 지혜, ② 도덕적 지혜, ③ 정치적 지혜, ④ 철학적 지혜, ⑤ 신비적 지혜, ⑥ 과학적 지혜가 잠언에 나타난다.
구약 성경의 잠언은 세상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세상 사람들의 가르침은 자신들이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진리를 아주 간단한 한 마디의 말로 재치 있게 요약을 한 것이다.
사실 세상적인 잠언들이 성경적인 잠언들보다 더 재미가 있고 센스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잠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면서 그 적용 부분을 모아 놓은 것이기에 뛰어나다.
잠언은 경제교과서는 분명 아니지만 경제적 성공의 길잡이로 이해한다. 그 이유는 지구상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집단이 유대인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다.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지 말라(약1:22). 은혜의 말씀을 실제적인 삶에 적용해야할 교훈들만 모아놓은 엄청난 값어치를 가진 것이 잠언이다.
잠언은 삶의 전반에 걸쳐서 지혜를 이야기한다. 잠언의 핵심은 “삶의 행복, 진리의 확장”이다. 잠언은 방법론에 대한 책이다.
유대인들의 교육 중심은 “토라와 탈무드”이다. 토라는 모세오경이고, 탈무드는 성경을 기초로 한 율법 해석서이다. 탈무드는 유대인들의 광범위한 저작물인데, 탈무드의 핵심은 성경이다.
잠언은 행복이란 무엇인가가 관심 주제가 아니라,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잠언은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라”고 가르친다.
유태인들이 어떻게 부를 쌓았을까를 연구한 책들은 많다. 그들의 연구결과들은 대동소이하다. 거의 잠언에서 나오는 교훈들이다.
잠언에서는 진정한 부를 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잠언이 물질과 재물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잠언에서 재물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언급하지만 재물의 가치를 지혜보다 더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잠언은 돈보다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유대인들은 재물을 얻는 것보다 지식을 얻는 것을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경건한 삶을 이익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하게 생각한다. 욕심을 초월하는 방법이 잠언에 있다.
유대인은 결코 자기만 이익을 보려고 장사하지 않는다. 장사의 목적이 많은 돈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함이다.
유대인들의 장사 수완은 ‘정직’이다. 가격을 속이고서는 한번은 팔아먹어도 결코 두 번 다시 팔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이 가장 복된 삶”이다.
잠언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눈다. 첫 번째 부분은 9장까지인데,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적인 지혜를 두 여자의 비유로써 비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도 길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선전하고, 세상 지혜도 길거리에서 자신을 선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선전, 세상 지혜는 유혹하는 창녀로 비유한다.
유혹하는 창녀들의 웃음은 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돈 때문에 유혹하는 것이고, 결국 파멸로 이끌고 만다.
하나님의 지혜는 온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능력을 가르치는 것으로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혜이다.
잠언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가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을 부르는데, 오직 이스라엘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들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와야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스바 여왕이었다.
스바 여왕은 하나님의 지혜를 듣기 위해 여왕으로서의 모든 바쁜 일정을 취소하고, 엄청난 선물을 준비해서 이스라엘을 찾아왔다.
스바 여왕이 예루살렘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흔하다는 것”이었다.
솔로몬의 신하들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매일 하루 종일 하나님의 지혜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스바 여왕의 부러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안에 잠언이 필요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흔하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본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정욕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잠언에서 지혜의 길도 있고, 정욕의 길도 있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영적인 깊은 체험을 하고서도 정욕의 길, 세상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말씀을 많이 배우는 것이 아니고 깨달은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여 유혹을 이기는 것이다.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한히 풍성한 말씀과 부흥의 축복이 있을지라도 겸손히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출세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모하는 많은 보물들이 세상에 있다.
① 돈을 많이 가져 부자가 되는 길도 있고, ② 권력자가 되는 길도 있고, ③ 유명한 학자가 되는 것도 출세의 길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이 된다.
성경은 이 세상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길을 걸어가는데 가장 위험한 것은 2가지이다. ①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축복이 막혀 버리는 것이다. 축복이 막히는 불상사는 말씀을 버리고 정욕을 따라갈 때 발생한다.
②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의 꾀에 넘어져서 미혹되기 시작하면 말씀의 뜻을 알지라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오늘 우리가 대하는 본문(1~9)은 잠언 전체의 서론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잠언의 첫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유익을 설명한다.
잠언을 읽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러한 놀라운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 귀를 솔깃하게 하려는 것이다.
잠언의 저자는 잠언을 듣는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유익부터 알려주고 난 후에 진정한 지혜를 제시하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시대에 엄청나게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했다. 출애굽한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그냥 황무지를 할 일없이 돌아다닌 것이 아니고, 엄청난 말씀의 폭발을 체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보다는 광야에서 더 풍성한 말씀의 은혜와 그 능력을 체험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은 다윗 왕 때 다시금 엄청난 말씀의 부흥을 체험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나서 죽어라고 말씀을 붙잡았는데, 그때부터 말씀의 부흥이 이스라엘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후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더욱더 말씀의 부흥을 일으켰다. 다윗은 자기가 왜 왕이 되었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다윗은 도망생활을 하면서 붙들었던 그 말씀으로 온 이스라엘에 대부흥을 일으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을 때 나타내는 반응은 두 가지이다. ① 이제는 축복을 즐기자고 생각하는 사람, ② 고생하고 가난할 때 붙들었던 말씀을 더 부흥시키라는 뜻을 향해 열정을 쏟는다.
둘 중에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파악한 사람이 누구일까? 예수께서는 소출이 많았던 어리석은 농부 비유를 하셨다. 광야를 통과시킨 후 가나안 땅을 주신 목적은 더 큰 부흥을 위한 것이다.
다윗 왕 때 일어났던 말씀을 통한 부흥은 솔로몬 때 잠언으로 엮을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말씀들이 쏟아졌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것은 “솔로몬이 혼자서 만들어낸 격언이 아니고 다윗 때부터 일어났던 말씀의 대부흥의 요약판”이다.
‘지혜(2, 기술)’는 “철학적인 지혜가 아니라 공학적인 지혜 즉 물건을 만드는 요령 같은 것”을 말한다. 혹독한 연단과 훈련을 통과하며 오랫동안 노력해서 터득되는 기술은 모방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분야든지 성공하려면 기술적인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조금만 유명해지면 금방 모방된 상품이 출시된다. 말씀을 붙든 사람들의 성령의 은사는 모방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훈계’는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을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죄의 충동이 일어나기에 훈계하지 않는다면 대형사고가 터진다. 핸들을 돌려 방향을 잡아야 한다.
‘명철’은 “이미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몸에 체득되어 구체적인 분별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문제들은 명철을 가지고 매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매순간 지혜를 주셔서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 명철이다. 3절 말씀은 명철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① 지혜롭게 행하는 것의 반대가 맹목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무조건 직진할 때 불필요하게 다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② ‘의롭게’라는 것은 죄를 이기는 능력을 말한다. 아무리 큰일을 하고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죄를 이기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③ ‘공평하게’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말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으려면 먼저 공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생각을 시행하라고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보냄을 받았기에 명철해야 한다.
④ ‘정직하게’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을 쉽게 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유능하거나 똑똑하지 못해도 정직한 것이 기본이다. 우리가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때 모든 허물을 용서하신다. 하나님 앞에서도 변명하거나 거짓을 말하면 안된다.
‘근신’은 채찍질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 듣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세상의 욕망과 유혹을 이길 수 없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진다.
자동차가 달리려면 계속적으로 엔진이 튼튼하게 돌아야 하듯이 축복의 길을 가려면 계속적으로 영적인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많은 신앙인들이 자꾸 변덕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축복을 언어로 바꾸어서 성경 안에 넣어주셨지만, 평범한 언어와 내용 속에서 보물을 캐내야 한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기에 오묘한 말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6).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 대한 비밀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말씀을 깨달아야 잡석 같았던 삶이 보석의 인생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핵심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데 있는 것”이다(7). 잠언 전체의 핵심은 7절 말씀이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사람의 중요한 사명이고, 창조하신 목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 때 나타나는 반응은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