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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9~13)

  • 김낙주 기자
  • 입력 2026.04.2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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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9~13)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5가지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① 연애편지처럼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사랑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②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한다. 주어진 정황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주관대로 읽으면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③ 성경을 읽을 때 예수와 연결하여 읽어야 한다. 성경 어느 곳을 찔러도 예수의 피가 나온다는 말처럼, 모든 성경은 예수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예수가 사라진 성경해석은 바람직한 해석이 아니다.

 

④ 성경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지 들어야 한다. 설교를 하든 성경공부를 하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삶의 변화에 있다.

 

성경을 통해 예수가 누구신지를 깨닫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 거룩한 삶을 배워야 한다. 온유와 겸손의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위해 변화하고 결단하고 헌신해야 한다.

 

⑤ 성령의 조명을 의지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이루실 구원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나는 것이나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이나,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우셔서 말씀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창세기에서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낙원이 닫히게 되었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인류의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낙원을 회복하시고, 저주가 사라지고 접근이 불가능했던 생명나무로 들어가게 된다.

창세기에서 죄로 말미암아 탄생한 슬픔과 죽음이 시작되었다면, 계시록에서는 세상의 모든 죽음이 끝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다. 창세기는 구원에 대한 약속을 보여주고 계시록은 완성될 구원을 보여준다.

 

모든 성경이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사이에 존재하듯이, 인류의 모든 역사도 동일하게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사이에 존재한다.

 

창세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주제는 “축복과 저주”이다. 성경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310회 등장하는데, 창세기에 ‘86회’ 나온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삶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의 복은 축복과 저주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다. 말씀에 순종하고 신뢰할 때 축복이 임하고, 불순종하고 신뢰하지 않을 때 예고하신 저주가 그대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삶이고, 저주는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단절된 삶이다.

 

순종에서 오는 축복과 불순종에서 오는 심판은 구약성경 전체의 주제이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말씀에 대적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

 

우리는 주일 오전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고백하고 있다. 사도신경에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한 계획과 질서를 보여준다. 창조의 구조를 살펴보면, ① 첫째 날과 넷째 날, ② 둘째 날과 다섯째 날, ③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대구를 이룬다.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넷째 날 빛과 관계되는 해와 달, 별들을 만드셨다. 둘째 날 하늘과 궁창을 만드시고, 다섯째 날 조류와 어류를 만드셨다.

셋째 날 바다, 땅, 식물을 만드시고, 여섯째 날 동물과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은 먼저 건물의 뼈대를 세우고 그 안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놓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무작위로 행하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질서와 규모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창세기는 진화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의 생명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각각의 생명체였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씨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씨를 가진 연륜이 있는 생명체를 창조하셨다. 씨가 그 열매 속에 있어서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풀과 채소와 나무의 근본적인 재료를 땅 속에 있는 광물질에서 택하셨다. 생명체들의 요소를 분석해보면 광물질로 형성되어 있다. 실제로 식물체를 분석해보면 땅속에 있는 질소라든가 땅 속에 있는 기타 화학물질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진 사회이다. 잘 정돈된 도로망과 CCTV가 보호하는 거대한 온실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난 개발로 인한 자연의 훼손은 위험한 시한폭탄과 같다.

 

감히 자연을 건드렸다가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자연이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있을 때에는 행복하지만, 산이나 바다나 하늘이 분노를 품게 되면 사람들이 누리던 작은 행복은 단번에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날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8). 하지만 땅이 물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0)"고 말씀하셨다.

땅이 물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0,13)"는 말씀을 유일하게 두 번씩이나 하셨다고 기록한다.

 

이는 하늘과 땅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보좌이고 땅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에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된 상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 계신 곳은 없으시지만 하늘을 하나님의 보좌로 여기시고 예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주기도를 통해 가르쳐주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뜻이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생이 누릴 수 있는 복 중의 복은 창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창조의 회복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완전하게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 창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기에 자기 자신의 뜻을 포기하셨기에 죄로 파괴된 세상이 새로운 창조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예수 보혈의 은혜를 힘입어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 우리 안에 창조의 기쁨과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최고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위의 물과 아래물이 나뉘어 모이게 된 창조된 하늘처럼 땅에서도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심으로 뜻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물에서 땅이 드러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의 능력으로 땅과 바다의 경계를 정하셔서 물이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정하셨다(렘5:22).

 

하나님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모래에게 말씀으로 바다와 땅의 한계가 되라고 명령하시니 그 모래가 영원한 땅과 바다의 경계가 되었다.

 

연약한 모래 위에 말씀의 능력이 임하니까 바다와 땅의 경계의 사명을 지금까지 잘 감당하고 있다. 반면에 택함받은 이스라엘은 위대한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했기에 패망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모래처럼 연약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 인생이 새롭게 창조되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회복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신 예수의 영이 심령 안에 들어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기적과 표적만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

 

예수가 보여주신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담겨 있음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동정녀 마리아였다. 천사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라고 하자,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다.

 

돌에 맞아 죽어도 그 말씀이 이루어진다면 그 길을 걷겠다는 것이 마리아의 창조의 능력인 말씀을 받아들이는 신앙인 것이다.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풀과 채소와 나무를 만드셨다(11). 아직 해, 달, 별이 창조되기 전이지만 첫째 날 창조하신 빛이 있었기에 각종 식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맨 처음부터 완제품 내지는 완성품이었다. 하등 식물이 고등 식물로 진화하거나 하등 동물이 고등 동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동식물을 종류대로 창조했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가 땅에 대해 근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땅이 물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하늘이 만들어진 후에도 땅은 물로 덮여 있었다. 이 세상은 온통 물이었고 땅은 한 평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라(9)’고 말씀하셨을 때 땅이 솟아오르고 꺼짐으로써 바다가 생기고 땅이 드러났다(시104:6).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라’는 주의 꾸짖으심에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가서 물이 한 곳으로 쏠리고 땅이 드러났다(시104:7~8).

 

땅이 물에서 나왔다는 것에는 많은 증거가 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3:5)”고 했다.

 

물에서 나온 땅은 바다 밑이 아래로 꺼지지 않고 땅이 솟지 않았더라면 땅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땅이 다시금 물 속으로 가라앉지 못하도록 바다의 경계를 모래로 정하시고 바닷물이 땅으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절대로 공허한 상태로 두시지 않고 채워 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21:10)”고 하셨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내쫓아야 할 하갈과 이스마엘(육신적 생각과 방법)이 있다. 하나님이 셋째 날 만드신 바다와 육지의 특징은 “흐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통해 온 민족들에게 흐르도록 하셨다.

 

하늘에도 흐르는 기류가 있고, 바다 속에도 바닷물이 흐르는 기류가 있다(태풍, 허리케인). 하늘이나 바다에는 우리의 눈으로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흐르는 기류가 있어서 맑고 깨끗한 것이다.

 

뜻 글자인 한자에서 ‘법(法)’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물(氵)이 간다(去)’는 뜻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는 것(암5:24)”이 아니다.

 

아모스가 사역할 당시 이스라엘의 경제적 부유함은 이방 민족처럼 전쟁으로 얻은 게 아니라 율법을 준수하지 않고 거짓에 미혹돼 형제를 속인 결과였다. 가짜 저울로 상거래를 하고 이익을 편취했으며 가난한 자들을 압박해서 일부 계층만 부를 축적했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통해 세상에 “공법(법이 바르게 집행되는 의롭고 건강한 사회)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보내기를 원하신다.

 

흐름의 원리는 자연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권력도, 재력도, 사랑과 배려도 높은 데서 낮은데로 흘러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권력에서 뽑는다면 선진국의 권력은 흐르는 권력이고 후진국의 권력은 흐르지 않는 권력이다.

선진국은 권력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흐르고, 야당에서 여당으로 흐르기 때문에 정치가 안정되고 건강한 것이다. 그러나 후진국의 권력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한 권력이 수십 년간 지속되기 때문에, 권력이 흐리지 않기에 정치가 발전이 없고 어두운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건강하려면 경제도 흘러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흐르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다. 흘러야 아름다운 것이 건강하고 깨끗하고 맑게 유지되는 것이다. 고여있는 물과 흐르는 물의 차이는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되고, 흐르는 물은 깨끗하게 되어 있다.

 

한국은 1993년 8월 12일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던 이유는 지하경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하경제의 규모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경제가 어렵고, 빈익빈 부익부가 된다.

 

여름이 되면 대구가 대프리카가 되는 이유는 공기가 흐르지 못하는 분지이기 때문이다. 대구는 분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낮은 곳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발달한 지역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흘러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십일조이다. 십일조가 흘러야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고 힘이 있는 것이다.

 

십일조는 단순한 헌금 행위도 아니고 기부(donation)도 아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의 표시로 드리는 것이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의 표시가 십일조의 핵심 정신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흘러야 할 곳으로 흘러야 건강해지고, 흐르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십일조가 하나님께 흐르지 않고 내 손에 있으면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십일조를 거두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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